연륜으로 다져진 리더가 천하를 다스린다 | |
기사입력: 11-01-17 18:29 조회: 5968 별점:
신동기 (신동기 인문경영연구소 대표) | |
[인문으로 배우는 경영] 역사 속 나이 어린 리더 VS. 연륜 갖춘 리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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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헌종•철종, 왕위 계승이 그 어린 나이만 아니었어도… 조선시대는 모두 27명의 왕이 518년간 다스렸다. 평균 재위 기간은 19년이었다. 그리고 왕위에 오를 때 평균 나이는 24세였다. 조선 왕들 중 가장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이가 바로 헌종이었다. 7살에 왕위에 올랐다. 그 다음 두 번째로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이가 바로 순조였다. 보위에 오를 때 나이가 10살이었다. 그리고 헌종의 뒤를 이은 철종은 헌종이 22살에 죽는 바람에 자손이 없어 부득이 집안 먼 친척으로 강화에서 농사를 짓다 갑자기 보위에 오르게 되었다. 물론 학문은 고사하고 글도 읽을지 모르는 19세의 농촌 청년 ‘강화 도령’ 철종이었다. 중국에서는 아편전쟁(1840-1842년)이 터지고, 일본에서는 선각자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이 죠슈(長州)에 쇼오카 손쥬쿠(松下村塾)를 차리고 피를 토하면서 젊은이들에게 요동치는 국제정세 속에서 일본의 위기를 외칠 때, 조선왕조는 어린 왕을 에워싸고 기득권 세력들이 국가 시스템을 유린하고 자기 주머니를 채우는 데 정신이 없었다. 역사에 가정은 무용한 일이지만 순조•헌종•철종 3대가 조선 27명 왕의 평균 왕위 계승 연령인 24살에만 보위에 올랐더라도 조선왕조는 그렇게까지 이웃 국가들의 탐욕 희생물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외척의 세도에 그 정도로 놀아나지 않았을 것이고 앞서 76년간 영•정조의 치적을 이어받아 그대로 개혁 분위기를 지속시키기만 했어도 그렇게 손쉽게 일본의 먹이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로마의 영토 확장은 BC27년 제정 시대로 들어갈 무렵 대체로 마무리되나, 로마 제국 최대 판도를 자랑하는 시기는 13대 황제인 트라야누스(재위 98-117년) 때이다. 로마 최대 전성기인 5현제 시대는 이 트라야누스 황제를 포함한 다섯명의 황제가 차례대로 제위에 오른 96년부터 180년까지이다. 5현제 시대, 팍스 로마나 시대를 가져 온 다섯명의 황제는 12대 네르바(96-98년), 13대 트라야누스(98-117년), 14대 하드리아누스(117-138년), 15대 안토니누스 피우스(138-161년), 16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161-180년)이다. 이들 황제들의 공통점을 보면 어느 정도 학문이 되어있을 뿐만 아니라 모두 나이가 40이 넘어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는 것이다. 폭군의 대명사로 생모를 살해하고 동성과 결혼을 했던 5대 황제 네로(재위 54-68년)가 16살에 황제의 자리에 올랐고, 영화 글래디에이터로 더욱 유명해진 로마 제정 최악의 황제 17대 콤모두스(재위 177-192년)가 16살에 제위에 오른 것을 보면, 한 국가나 한 조직을 책임지는 자리에 오르는 사람의 나이가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를 실감할 수 있다. 폭정을 일삼았던 황제 콤모두스는 헤라클레스를 자처하다 폭군 황제답게 애첩과 시종장, 친위대장 등 가장 가까운 세 사람의 손에 의해 살해당한다 유방이 항우를 무찌를 수 있었던 이유는 연륜 ‘흙먼지를 날리며 다시 돌아온다’는 고사성어 권토중래(捲土重來)를 낳은 오강포 전투지만 정작 그 주인공인 항우는 권토중래를 하지 않았다. 유방의 공격을 피해 오강을 건너 후일 강동의 건아들을 모아 그야말로 권토중래, 재기를 도모해야 했었지만 항우는 그러지 못했다. 불세출의 영웅, 24살에 몸을 일으켜 대륙의 전장을 종횡무진하면서 7년동안 70회 싸움에서 불멸의 전과를 세운 31살의 항우는 젊은 패기와 자존심 때문에 자신의 단 한번의 패배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사랑하는 여인 우미인의 목을 치고 26기의 군사들과 함께 최후의 결전으로 장렬하게 전사함으로써 후세에 극적인 감동은 남겼지만 역사를 일으키는 주인공이 되지는 못했다. 만일 14살이 더 많은 45살의 유방이 항우의 입장이었다면 유방은 당연지사 권토중래를 도모했을 것이다. 물론 이 때도 최후의 승리는 유방이 쥐었을 가능성이 높다. 연륜이 주는 지혜 때문에. 천하의 전략가 제갈공명이 유비를 섬긴 이유는? 나관중의 삼국지를 읽다보면 어떻게 보면 진정한 주인공은 유비나 조조가 아닌 제갈공명이다. 삼국지 중간에 등장하긴 하지만 그가 한 역할이 많을 뿐만 아니라 그 성과 또한 가장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어디까지나 고용된 고문이었을뿐 오너는 유비였다. 역사를 살펴보면 오너의 명성을 능가할 정도의 성과를 내고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면 당연히 그는 제거의 대상이었다. 오너가 보상해 줄 수 있는 한계를 뛰어넘어 성과를 내는 것은 오너를 능멸하는 일일 뿐 더 이상 충성일 수 없기 때문이다. 유방에 대한 한신이 그런 입장이었고, 사울에 대한 다윗의 입장이 그랬다. 그렇다면 어떤 다른 역사적 인물보다 오너를 뛰어넘는 성과를 내고 명성을 떨친 제갈공명이 유비로부터 견제당하지 않고 장수무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유비와 제갈공명의 나이차였다. 유비가 삼고초려로 제갈공명을 찾아가 머리를 숙일 때 유비의 나이는 47살이었다. 당시로 치면 손자 엉덩이 두드리면서 뒷방차지를 할 나이였다. 그리고 제갈공명은 새파란 27살이었다. 47살의 황실 후예가 학식과 지혜를 가지고 있다고는 하나 아직 검증된 바 없는 27살의 젊은이를 고문으로 영입하기 위해 세 번이나 그의 집을 찾아갔다. 결국 핵심은 나이였다. 세상 살만큼 살아보고 실의와 어려운 과정도 겪어 본 유비의 입장에서 20살이나 손 아래인 제갈공명의 성과나 명성을 질시할 일은 없었다. 자신은 오너로서 지분만 꽉 쥐고 잃지 않으면 되었다. 명성은 허허로운 것일 뿐 중요한 것은 손에 쥘 수 있고 눈앞에 보이는 실재였다. 실리주의자이자 연륜의 지혜를 갖춘 유비 입장에서 제갈공명이 큰 성과를 내면 낼수록, 명성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주군인 자신은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 나이였다. 공허한 명성에 집착하려는 인간의 약점을 충분히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40대 후반이었다. 리더로서 연륜의 중요성 혹자는 오늘날 기업의 오너 회장이 마치 과거 왕조시대 제왕같다고 말한다. 당대 사회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지니고 있고 소유지분에 의해 자리를 세습한다는 점에 있어서 왕조시대의 왕과 지금의 기업체 회장은 전혀 다를 것이 없다. 그렇다면 왕조시대 후계자를 정하는 것처럼 오늘날 기업체의 후계자 승계 역시 연륜이 매우 중요하다. 아니 오히려 과거보다 훨씬 더 중요해졌다. 변화와 도전이 전통과 정통을 앞지르는 21세기 경영 환경에서 한 리더의 사고와 행동이 조직과 사회에 미치는 결과의 편차가 과거보다 훨씬 더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 조직의 성장뿐만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를 위해서도 후계자의 연륜은 냉정하고 진지하게 검토되어야 한다. 그것이 재화와 조직 그리고 사회가 함께 잘 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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