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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학사 65세 김인경은 23세 수재 김구에게 의발을 전하다

multiki 2011. 3. 29. 16:06

☀ 김구(金坵)에게 의발(衣鉢)을 전(傳)하다.               부안김씨대종회 홈 바로가기
 

고종19년 임진(壬辰)1232년 5월에 춘장(春場)의 과거(科擧)실시되였다. 이때에 한림학사(翰林學士)승지(承旨)정삼품(正三品)의로서 지추밀원사(知樞密院事)종이품(從二品)을 겸하고 있던 김인경(金仁鏡)이 지공거(知貢擧)가 되었고 한림학사(翰林學士)정사품(政四品) 김태서(金台瑞)가 동지공거(同知貢擧)로 임명되였다. 이 과거에서 장원(壯元)문진(文振)등 진사29명 명경2명이 급제하였다. 그는 18세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23세의 나이로 춘장에서 장원을 능가할 만한 실력을 발휘하였다.

김구의 초명(初名)]은 백일(百鎰)이라 하고 자(字)는 차산(次山)이요 호(號)는 지포(止浦)이며 어려서부터 재주가 비범하여 신동(神童)이라는 별명을 들었다 김구(金坵)는 신라 마지막 임금의 경순(敬順)왕(王)의 후예이니 본관(本貫)은 부령(扶寧:扶安)이며 중시조(中始祖)는 세칭(世稱)마의태자(麻衣太子)라고 하는 김일(金鎰)이다 경순왕이 신라천년사직을 고려 왕건에게 넘겨주고 송도개성으로 떠날 때 에 마의 태자는 망국의 태자로서 부왕(父王)의 뒤를 따르지 않고 금강산으로 들어가 마의(麻衣)를 입고 초식(草食)을 하면서 불도(佛道)에 귀의하여 생애를 마친 분이시다.

태자의 4세손 경수(景修)는 고려조에서 문과급제하여 이부(吏部)상서(尙書)를 지냈고 그아들 춘(春)이 부령(扶寧)부원군(府院君)에 봉(封)함을 받았으므로 마의태자를 부령(扶寧)김씨(金氏)1세조로 삼고있다. 마의 태자의 9세손으로 金坵는 어려서부터 시와 문장으로 이름을 떨쳤으며 이번춘장에서 뛰어난 실력을 발휘하여 시험관 이 였던 金仁鏡으로 하여금 자신의 衣鉢을 전할만한 인물로 지목하게 되었다.

고려시대의 풍속에는 과거 급제자 들이 시험관을 찿아가 인사를 드리고 그 문생(門生)이 되어 평생 동안 스승처럼 섬길 것을 다짐하였다. 그리하여 시험관을 은문(恩門)이니 좌주(座主)니 하여 부모와 같이 공경하고 지극한 마음으로 가르침을 받았다.그리고 지공거(知貢擧)와 같은 등급으로 급제한 사람을 전의발(傳衣鉢)이라고 했다. 김구(金坵)는 예(禮)를 갖추어 좌주(座主)인 김인경(金仁鏡)의 은문(恩門)을 찿아 가 배알(拜謁)하고 사은(謝恩)했다.

이때에 65세의 한림학사(翰林學士)승지(承旨) 김인경은 23세의 수재(秀才) 김구(金坵)의 급제를 축하(祝賀)해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옛날 중국 후주(後周)시대 사람으로 노국공(魯國公) 화응(和凝)이 과거(科擧)에서 3인으로 급제했는데 나중에 시관(試官)이 되어 과거를 주관하게 되었을 때에 범질(范質)을 3인으로 발탁했다네. 범질이 시관 이였던 노국공 화웅을 찾아가 인사를 올리자 화응이 말하기를 자네의 문장이 당당히 장원으로 뽑혀야 마땅한 일이지만 낮추어 제3등으로 굽혀둔것은 나의 의발(衣鉢)을 자네에게 전하려는 생각에서 그렇게 한것 일세 라고 했다니 재미있는 고사가 아닌가? 하면서 유쾌하고 인자한 표정으로 웃는것이였다.

청년수재 김구는 어찌 그말을 모르겠는가? 명종24년 춘장에서 장원을 빼앗끼고 제2인으로 급제한 김인경(金仁鏡)이 이번고종19년 임진(壬辰)1232년 춘장의 지공거(知貢擧)가 되어 장원감인 나(김구)를 장원으로 뽑지않고 제2인으로 낮추어 합격시킨것은 당신(김인경)의 의발(衣鉢)을 전하기 위한생각에서 그리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에 김구는 너무도 감격하여 다시한번 정중히 고개숙여 이렇게 사례의 인사를 올렸다. “불초한 문생(門生)에게 급제의 광영을 주신 것만으로도 지극히 황감하옵거늘 은문(恩門)의 의발(衣鉢)을 전해주시고자 하오니 그 은혜(恩惠)와 자애(慈愛)를 무엇으로 보답하리까?” 의발(衣鉢)이라 함은 불교(佛敎)의 승려(僧侶)들이 사용하는 가사(袈裟)와 바리때를 말함인데 곧 전법(傳法)의 표시가되는 물건이다.

이렇게 좌주와 문생(門生)의 깊은 인연을 맺은 두사람은 사랑하고 존경의 부자(父子)관계처럼 가까이 지냈으며 집으로 돌아온 김구는 오늘의 감격적인 순간을 잊을 수 없어 붓을 들고 의발(衣鉢)을 전하시겠다는 좌주(座主) 김상국(相國) 양경께 감사하여 올리는글(上座主金相國良鏡謝傳衣衣鉢啓)을 지었는데 그글이 그의 문집인 止浦集 권3에 수록되어 전한다.

以齒之稚幼也 : 나이 어릴 적에

每喜遊嬉 : 매양 놀이를 좋아 하셨지만

然性之頴悟也 : 타고난 성품이 슬기로워

頗工詞學 : 사학(詞學)문장이 매우 뛰어나셨으며


金坵 作
坵伏承恩門相國 : 坵는 엎드려 은문(恩門) 상국(相國)께 바치나이다.

嘗登科爲第二人 : 일찍이 제2인으로 등과 하시어

至踐相位 : 政丞지위 이르시고

主闢禮闈 : 예위(禮闈 :科擧)를 주관 하셨는데

僕以不才 : 저는 재주없는 몸으로서

亦及門下第二名 : 또한 문하(門下)에 제이(第二)인(人)의 이름으로 급제하여

蒙擧和范二魯公 : 화응(和凝)과 범질(范質) 두분 노공(魯公)이

傳衣鉢故事 : 의발(衣鉢)을 전한 고사(故事)를 들어 言及之者 : 말씀하여 주심을 받자왔습니다.

중략(中略)

恭惟 : 공경하여 생각하옵건데

恩門相國閤下 : 은문(恩門)상국(相國) 합하(閤下)께서는

玉鷰奇才 : 옥제비 태몽으로 탄생한 張說같은 奇才이시며

石麟異表 : 석기린(石麒麟)같은 서릉(徐陵)의 기이한 모습으로

精神降於鵠嶺 : 곡령(鵠嶺)개성 북쪽 송악산 에 내린 정신(精神)을

公獨得之傑然 : 공(公)께서 홀로 얻으시어 뛰어나시고

骨格貴於鷄林 : 계림(鷄林)에서 고귀하신 골격(骨格):혈통(血統)을

世不墜乎胎厥 : 대를 이어 떨어뜨리지 않고 이어 주셨습니다.

耿介之節 : 빛나고 기개 있는 충절(忠節)은

朝廷右之霜竹 : 조정의 옆에 있는 상죽(霜竹)과 같고

謙遜之心 : 겸손(謙遜)한 마음씨는

宰相中之布衣 : 재상(宰相)가운데의 벼슬없는 선비 같으십니다.

雖本初世系遠長: 비록,근본과 시초의 세대(世代)는 오래되었지만

及中間門祚衰落: 중간(中間)에 이르러 가문(家門)의 운수가 쇠락(衰落)하여

大人 : 대인(大人):아버님 영고(永固)께서

赴瀛州之刺使 : 영주(瀛州:전북(全北)고부군(古阜郡)자사(刺史)로 부임(赴任)하시니

任騎篠馬以追隨: 죽마(竹馬)를 타고 뒤를 따라가셨다가,

數載 : 수년(數年)만에

投喜安之昌黎 : 희안(喜安)전북(全北)부안(扶安)군 의 창려(昌黎)로 귀양살이를 하시니

公就否壇而講習: 공(公)께서는 행단(杏亶)가셔서 글을 배웠습니다,

豫章之木雖少也: 예장(豫章):중국의 남창 지방의 나무는 비록 작아도

已有凌霄之氣 : 이미 하늘을 능가할 만한 기상을 지녔고

騄駬之馬雖弱也 :녹이(騄駬):준마(駿馬)의 어린망아지는 비록 약하지만

早含逐日之心 :일찌기 태양을 쫓아갈 마음을 머금고 있듯이

泉涓涓而始達 : 샘물이 졸졸 흘러 비로소 도달하고

火焰焰而大燃 : 불이 반짝거리다가 크게 타오르는 듯

初不用意 : 처음부터 마음을 쓰지 않았어도

而宿稿撑腸 : 오래된 원고(宿稿)가 창자 속에 가득하여

及其成章 : 그것이 문장을 이루게 되면

而老儒拱手 : 늙은 선비들도 손을 모아 칭찬하였습니다.

出乎類 : 무리에서 뛰어나고

拔乎萃 : 모인데서 빼어남이

如野鶴之處群鷄 : 마치 야학(野鶴)이 닭의 무리속에 있는듯 하고

動於中 : 마음속에서 움직이어,

形於言 : 말로 표현하신 문장은

若森絲之抽獨繭 : 마치 누에 고치에서 빽빽한 실을 뽑아내는듯 하셨으며,

技與行年而漸長 : 솜씨는 나이를 따라 점점 자라,
名傳衆口而相譁 : 명성(名聲)이 사람의 입에 전하여 떠 들썩 했습니다,

洎返鳳城 : 봉성(鳳城:궁성(宮城)-개성(開城))으로 돌아오시어

旋登豹榜 : 선뜻이 표방(豹榜:국자감시(國子監試))에 급제하셨습니다,

張曲江 : 장곡강(張曲江:당나라 현종 때의 재상 장구령(張九齡)처럼

骨雄力傑 : 뼈가 굵고 힘이 세어

金毛獅子之 : 황금빛 털을 가진 사자가

肉視犀象 : 물소와 코끼리를 먹을 고기로 보듯 하고

孩撫熊羆 : 암곰과 숫 곰을 어린아이 어루만지듯 하였습니다.

李謫仙 : 이적선(李謫仙:당나라 현종 때 시인(李太白))처럼

氣壯心遐 : 기운이 장하고 마음이 높아,

雲翼大鵬之 : 구름 같은 날개를 가진 큰 붕새(大鵬)가

足縈虹蜺 : 밭에는 무지개를 가 얽어매고

目耀日月 : 눈에는 해와 달이 번쩍 이는 듯 했습니다,

作賦善於騈驤 : 부(賦)를 지으실 때는 변려문을 잘하시어

同時莫敢躋攀 : 당시에 감히 따라갈 사람이 없었으니

行行中 : 글의 줄마다

艶治之形容也 : 아름답게 다듬어진 형용은

趙后楊妃 : 조후(趙后:황후(皇后)조비연(趙飛燕))과 양비(楊妃)귀비(貴妃)양태진(楊太眞)이

盡態極姸 : 지극히 예쁜 태도를 다하여

而滿頭揷花 : 머리에 가득히 꽃을 꽂은듯 하였고

句句裏 : 글귀마다 그 속에는

屈强之勢也 : 굽힘과 강함의 형세가

孟賁夏育 : 맹분(孟賁:衛나라 의 勇士)과 夏育이

楊眉吐氣 : 눈썹을 치켜 올리고 기운을 토하며

而攘臂持戟 : 팔뚝을 걷어 올리어 창을 가진 듯 하였습니다.

傳之者腕脫 : 그것(公이지은 賦)을 전하던 사람은 팔둑이 빠졌고

而京師踊紙 : 서울의 종이 값은 뛰어올랐으며

誦之者脣腐 : 그것을 암송(暗誦)하던 사람은 입술이 상하고

而奴隸解文 : 무식한 종놈(노예(奴隸)들 까지도 글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或侍從於銅樓 : 혹은 동루(銅樓)에서 모시어 따르기도 하고

或優遊於璧水 : 혹은 벽수(璧水:국자감(國子監)의 연못)에서 노닐기도 했으며

擅鳴詩之席 : 시를 짓는 자리에선이름을 떨쳐 울렸으니

則世無臺敵 : 세상에는 대적할 사람이 없었고,

專發策之場 : 책문(策問)짓는 시장(試場)을 오로지 하였으니

則人或輈張 : 사람들은 모두 놀라서 두려운 모습 이였습니다.

盖丁鶴弔之憂 : 학조(鶴弔)의 근심 (어머니상사(喪事))을 당하시어

姑寢鶯飛之慶 : 과거에 급제하는 일을 .경사를 미루시다가

迨(태)夫闋(결)服 : 삼년복(三年服)을 마치시고 나서

更切收科 : 다시과거 보실 마음이 간절하시더니

當攝堤格之紀年 : 갑인(甲寅)년명종24년1194년 에 이르러

値崔相國之掌試 : 최상국(崔相國) 최유가(崔瑜賈)께서 장시(掌試)하게 되었습니다.

掃千軍陣韓信 : 일천군사의 陣을 소탕한 韓信은

雖國士之無雙 : 비록 나라의 선비중에 짝이될사람이 없었다,

封萬戶侯子房 : 萬戶侯에 봉해진 자방(子房):장양(張良) 같은이도

作(작)功(공)臣(신)之(지)第(제)二(이) :공신중에 제 이인자가 되었습니다.

鄭櫐之先登者 : 정루(鄭櫐)에 먼저 올라가시는것은

決矣 : 결정된 이리지만

羿(예)彀(구)之(지)不(불)中(중)者(자) : 예구(羿彀)가 맞이지 못한 것은

命歟 : 운명(運命)인가 합니다.

費經圖鶴之閒年 : 도학(圖學:직사관(直史館))의 한가로운 벼슬을 지내고

出倅燭龍之遠塞 : 촉룡(燭龍)의 먼 변방에 수령(守令)으로나가시어

淸若王彤(동)之(지)補(보)櫶(헌) : 왕동(王彤)의 보헌(補櫶)같이 청백하시니

鎭留遺愛於大江 : 대강(大江)에 인애(仁愛)의 유풍(遺風)을 남기셨고

賢如李勣(적)之長城 : 이적(李勣)의 장성(長城)처럼 현명하시어

盡入閒眠於高寢 : 모두가 베개를 높이 베고 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滿瓜期而復洛 : 임기가 끝나 도성으로 돌아 오시여

典蓬館以曬(쇄)書(서) : 봉관(蓬館:청연각(淸燕閣))에서 쇄서(曬書)직분을 하시면서

與諸淸襟貴遊 : 청금(淸襟:선비)들과 더불어 존귀 하게 노닐고

幾許高吟爛醉 : 고음(高吟)과 난취(爛醉)를 하심이 몇 번이였습니다.

拜監察於憲府 : 헌부의 監察에 임명되시어서는

咀開口合口之 : 익으면 입이 열어지고 안익으면 입이 다물어 있는

釅(엄)椒(초) : 짙은 천초(川椒)같은 말씀을 하시고

除拾遺於諫院 : 간원의 습유에 제수 되시여는

搗啓心沃心之 : 네 마음을 열어 내 마음에 물을 대라(啓乃心沃汝心)는

良藥 : 마음의 양약(良藥)을 찧으시니

忘跂傾朝之闊步 : 발돋움하여 멀리 바라보고 온 조정을 활보하셨으며

官新稱意之徐驅 : 뜻에 맞는 벼슬을 새로이 하여 천천히 나아가셨습니다.

頃者 : 얼마 후에

乘赤鼠之秋 : 丙子년 高宗3년1216년 가을 8月을 틈타서

有丹人之寇 : 거란(契丹)의 도적들이

忽柬入於義鎭 : 갑자기 의주(義州)진에 침입하여

深轉鬪於忠原 : 충원(忠原)에서 큰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只隔一江 : 다만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어서

非馬牛所不及 : 소나 말이 미치지 못할 곳은 아니었지만
尙堅雙壁 : 오히려 아군과 적군의 두 성벽이 견고하여

若蚌鷸之相持 : 황새와 조개가 서로 물고 물리어 버티는 듯했습니다.

公惟佐幕於中堅 : 공(公)께서는 오직 중군(中軍) 막하(幕下)에서 보좌 하시면서,

時乃轉籌於前箸 : 때에 따라, 전저(前箸)를 빌어 전략을 세우셨고,

陽若縛橋於出擊 : 겉으로는 다리를 놓아 출격하는 척하다가,

陰令麾(휘)陣(진)以(이)邀(요)攻(공) : 비밀 명령을 내려 군사를 휘몰아 공격하니,

誰敢當鋒 : 누가 감하 칼날을 당하리요?

彼皆虛氣 : 저들은 모두 굶주린 귀신처럼 기운이 빠졌으니,

傾五嶽而壓卵 : 오악을 기우려 달걀을 짓누르듯,

鼓千爐而爎毛 : 일천개의 화롯불에 터럭을 불태우듯 하셨습니다.

然此策誰謂奇歟 : 그런데, 이 계책을 누구나 신기하다고 말하지마는,

於我身赤爲世事 :“나에게는 아주 작은 일이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又寅歲之將抄 : 또 무인년에 노략질 하려고

有大軍之欻來 : 대군이 갑자기 쳐들어오니,

皆云何處之兵 : 모두들 말하기를,“어느 곳 군사인지”

若蹈無人之境 : 무인지경을 짓밟는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侵搖城堡 : 성보를 침노하고

劫掠髦倪 : 늙은이와 어린아이들을 겁탈하고 노략질하니,

是猶捨虎逢狼 : 호랑이를 피하고 나서 이리떼를 만난것과 같았으며,

何異捕蟬彈雀 : 매미를 잡다가 참새를 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碧幢元帥 : 碧幢元帥가 묻기를,

問誰能往餌 :“누가 능히 나아가서 짐승과 같은 적군의 마음에

於獸心 : 먹이를 주겠는가?“ 하니,

黑矟將軍 : 흑삭 장군(黑矟將軍)들이

皆不欲先塡於虎口: 모두 호랑이 입에 먼저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으나,

公乃身雖一介 : 공께서는 몸은 비록 하나지만,

氣敵萬夫 : 기상(氣象)은 만부(萬夫)를 대적할 만하여,

寧且爲有義之骸:“차라리 의로운 해골이 될지언정,

可不致見危之命: 나라가 위태로운 것을 보고 목숨을 바치지 않을 것인가?

豺狼叢裏 : 승냥이나 이리 떼가 모인 속이라도,

吾戴吾頭而直前: 내 머리를 들고 곧장 나아갈 것이며,

胡越舟中 : 오랑캐와 함께 같은 배를 타게 될지라도,

敵因敵勢而俱下: 적의 세력을 대적하면서 함께 내려가겠노라.“하시고

拳大漠於一掌 : 커다란 사막과 같은 적군을 한 손바닥으로 내래 처서,

肉强虜者千頭 : 억센 오랑캐 일천 명의 머리를 고기 덩어리로 만들었습니다.

褁韓囊魏 : 한나라를 자루에 담고, 위나라를 주머니에 넣을 듯한

而公之功百不隳: 공(公)의 공로는 백 가지로 손색이 없고,

頹嵩壓華 : 숭산(嵩山)을 무너뜨리고 화산(華山)을 짓 누를듯한

而公之節一何壯: 공(公)의 충절(忠節), 얼마나 장한 일입니까?

與彼帥而相送 : 저들의 장수(將帥)를 떠나보내고,

整吾旅而凱還 : 우리의 군사를 정돈하여 개선(凱旋)하시니,

遂乃論功 : 드디어, 공적을 의논하여

時惟注意 : 모두가 뜻을 기울여,

擢處龍喉之任 :‘용후(龍喉)의 벼슬’(승선(承宣): )에 발탁하여 올리니,

禹都舜兪 : 우 임금이 ‘도’하시고, 순 임금이 ‘유’ 하시듯 하였으며,

演成鴳口之辭 :‘안구(鴳口)의 말씀(충언: )’을 펴서 글을 지으시니,

鍖草産潤 : 정나라 비심이 지은 사령의 초안을 자산이 윤색한 듯, 훌륭 했습니다.

敵在執徐之御歲: 때마침, 庚辰년에高宗7年1220년에

曲開司馬之試闈: 사마시의 과거를 주관하셨는데,

藹然所擢之倫 : 발탁된 많은 무리들은

盡是知名之士 : 모두 다 이름이 알려진 선비들이었습니다.

故一門下 : 그러므로, 그 문하에서는

由藻鑑之至明 : 인격을 분별하는 식견이 지극히 밝으신 연유로,

不數年間 : 몇 해가 지나지 않은 사이에

捷桂科者太半 : 계과에 급제한 사람이 태반이었습니다.

向有黠頑之北虜: 지난날, 간사하고 완악하던 북쪽 오랑캐가

歲常侵擾於東藩: 해마다 동번에 침입하여 소요를 일으켰으나,

使難其因人 : 보낼 만한 사람을 얻기 어려우므로,

도疇咨於我 : (임금께서) 공에게 그 대비책을 자문하시니

丹穴山中九苞鳳: (공께서는) 단혈산속의 구포 봉황이

久翔赤石之墀 : 오래도록 적석의 계단 위를 날아다니듯

紫皇案前五色麟: 자미궁 황제 앞 오색 기린이

俄掣黃金之鎖 : 잠깐 사이에 황금 자물쇠를 풀어 놓는 듯 하셨습니다.

出轄行營 : 동북면 행영 병마사로 나가시어,

俄鰈海 : 접해에서 통할 하셨고,

入都大理 : 대리로 조정에 들어오시어,

於魘廳 : 염청에서 주관하셨는데,

以我賢 : 현명하셨기 때문에

無敵於廷中 : 조정 안에서는 대적할 만한 사람이 없었으므로

仗使節 : 사신의 부절을 갖추시고

又巡於塞外 : 또 변방 밖에서 순찰하시게 되셨습니다.

號令胡兒 : 오랑캐 아이놈들을 .

於一鞭之下 : 채찍 한 번 휘둘러 호령하시고

縱橫神算 : 신기한 계책을

於一脂之端 : 한 손가락 끝에서 마음대로 구사하셨습니다.

幾處舊題 : 몇 곳에 써 놓으신 옛 글에는
今始得紗寵之碧: 지금에야 비로소 벽사롱을 씌워 보존하게 되었고,

擧城遺老 : 온 성안의 유로들은

更相驚蓮幕之紅: 연화막의 붉은 빛에 다시 놀랐으나,

整官之嫌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을 고쳐 쓴’ 혐의가,

生於未然 : 미연에 생기고,
露齒之謗 :‘입술이 이를 드러낸’비방이

起於無事 :아무 까닭도 없이 일어났습니다.

金字暎牧丹葉 :황금 글자가 모란 잎에 비치니,

詩兩句之幻題 :시 두 귀가 변화되어 나왔고,

竹符分槐樹枝 :죽부를 괴화나무 가지에 나누니,

夢一場之謫臣 :일장의 귀양살이 꿈이었습니다.

政雖多最 :정사에 가장 훌륭한 업적이 많았사온데,

今此略陣 :이제, 여기에 간략히 진술하겠습니다.

是州之曠獄也 :이 고을의 감옥(監獄)이 텅 빈 적은

千古未聞 :천고에 듣지 못했으나,

自我之下車也 :공께서 타고 오신 수레에서 내리신 뒤로

一年無訟 :일년 동안에 송사(訟事) 하나 없었고,

蝗不入犬牙之界:황충(蝗蟲) 벌레조차 고을 경계 안에 들어오지 않아,

歲亦有秋 :가을에도 풍년 세월이었으며,

兩旣霑龜背之畦:가뭄으로 갈라지고 터진 논밭에 비가 내려

民不憂旱 :백성들은 가뭄 걱정을 아니 하였습니다.

星灰不再 :성회(星灰:一年)가 두 번 돌아오기 전에

劍屣卽還 :칼끝을 옮기듯이 검사(검도(劍屣)) 조정(朝廷)으로 돌아오셔서

久首處於臬司 :오래도록 얼사에서 으뜸(형부(刑部)상서(尙書)으로 계시다가,

又帶監於軍簿 :또 군부(軍簿)를 다스리는 임무를 띠셨으며,

昨離星座 :어제는 성좌(星座:장군)를 떠나시더니

俄轉銀樞 :잠깐 뒤에 은추(銀樞:추밀원)로 옮기셨습니다.

名入璃甁 :정승 물망에 오른 이름이 유리(琉璃)병 속에 들어가니,

位已魁於崇政院:지위는 이미 승정원(承政院)에서 으뜸이 되셨는데,

夢飛藥砌 :꿈에 약체(藥砌:중서(中書省)에서 날아다니시더니,

時欲起乎望省樓:때마침 망성루를 세우고자 할 시기였습니다.

魏鑑鑑唐 :위징(魏徵)이 당(唐)나라의 거울이었고,

蕭柱柱漢 :소하(蕭何)가 한(漢)나라의 기둥이었듯이

歷位彌重 :地位가 무거운 벼슬을 지내실수록

而身猶太疲 :몸은 오히려 너무 야위셨고,

憂國益甚 :나라를 근심하심이 더욱 심하여

而鬢亦早華 :귀밑머리조차 일찍이 하얗게 빛이 나셨습니다.

椽筆之任兮 :나라의 큰 문장을 짓는 연대지필(椽大之筆)의 책임은

皆委於予 :모두 다 공에게 위임(委任)했고,

羽書之勞兮 :전쟁에 군인을 소집하는 우서지경(羽書之驚)의 노고가

悉歸於我 :모두 다 공에게 돌아왔습니다.

領貢賓無枉路 :과거를 맡아서는 굽은 길(왕로(枉路)이 없으시어,

兩開王起之文場:두 번이나 왕기(王起)의 과장(科場)을 여시었고

敎英俊在吾門 :뛰어난 인재들을 뽑아서 문하(門下)에 두시고,

百節禹稱之遺恨 : 왕우칭(王禹稱)의 유한(遺恨)이 없도록 끊으시니,

天子嘉乃 : 천자(天子)께서는 가상(嘉尙)히 여기시고,

世人榮之 : 세상 사람들은 영광스럽게 여겼습니다.

無夫子國將奈何 : 부자(夫子:공자(孔子))께서 없었다면 나라가 장차 어찌 되겠습니까?

曰非夷범狄如也 : 오랑캐와 같이 될 것이 아닙니까?

盖我公天所幸爾 : 대개,우리의 공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바이시니,

惟是禮文係焉 : 오직,예법(禮法)과 문장(文章)이 이 분께 달려 있나이다.

고종19(1232년) 5월에 김인경(金仁鏡)이 주관한 춘장(春場)의 과거(科擧)를 마지막으로 하여, 그 이후 40여년 동안 강화(江華)천도(遷都) 시대에는 몽고군 침략 때문에 강화도에서 과거를 실시하게 되었다. 김인경은 왕경유수병마사와 참지정사를 지내고 고종 19년 12월에 평장사에 승진하여 정승 지위에 올랐고, 그의 의발(衣鉢)을 전수한 김구(金坵)는 원종(元宗) 때에 예부 시랑으로서 원나라와의 외교 문서를 담당하였으며, 서장관으로서 원나라에 다녀와서 ‘북정록(北征錄)’을 저술했다.

그리고, 이장용(李藏用)유경(柳璥)등과 함께신종(神宗)희종(熙宗)강종(康宗)3대의 실록(實錄)수찬(修撰)했으며 충렬왕(忠烈王)때에는 고종(高宗)실록(實錄)편찬에 참여했다.시문(詩文)으로 독보적(獨步的)인 위치에 있었던 김구는 상서좌복야 추밀원 부사 정당문학 이부(吏部)상서(尙書) 참지(參知)정사(政事) 중서(中書)시랑(侍郞) 평장사(平章事)에 올랐으며, 충렬왕이 즉위한 1274년에는 지첨의부사(知僉議府事) 참문학사 판도판사에 승진하여, 세상에서 존경과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충렬왕 4년(1278년)에 68세로 졸하니, 시호(諡號)를 문정공(文貞公)이라 하였고, 묘소는 전북 부안군 산내면 운산리에 있으며, 부안읍에는 문정공의 유덕을 기리는 도동 서원을 창건하여 김구(金坵) 김여우(金汝盂) 김석홍(金錫弘) 김계(金啓) 김해(金垓)등 5위를 향사(享祀)하고 있다. 좌주(座主) 김인경(金仁鏡)과 문생(門生) 김구(金坵)의 고사는 후세에 까지 사대부(士大夫) 사이에서 아름다운 화제로 전하여 왔다.

신숙주(申叔舟)가 세종 21년 기미(1439) 과거(科擧)에 제3등으로 합격(合格)하고, 정묘(丁卯)년(1447년) 복시(覆試)에는 제4등으로 합격했다. 서거정도 역시 세종 26년 갑자(1444년) 과거에 제3등으로 합격하고, 세조 3년 정축(1457년) 복시에 제4등으로 합격했다. 서거정(徐居正)이 신숙주(申叔舟)를 방문하여 인사를 올리니, 신숙주는 웃으면서, “자네같은 재주로서 어찌 제4등에 굽혀야 한단 말인가?”

라고, 위로하니, 서거정은 대답하기를,

“화응(和凝) 이후에 범질(范質)이 있었으니, 김구(金坵) 이전에 어찌 김인경(金仁鏡)이 없겠습니까?”

하니 신숙주(申叔舟)는 크게 웃었다고 한다.

 

자료출처 : 경청회 김석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