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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의태자 반론보도문 신청취지 & 주간 조선의 2010.8.2. 경김 태자파의 주

multiki 2011. 1. 31. 13:10

신 청 취 지

 

피신청인은 주간조선에 아래의 반론보도문을 게재하되 제목은 조정대상기사의 부제목활자크기로 하고 본문은 조정대상 기사의 본문활자 크기로 한다.

 

<반론보도문>

 

1. 제목 : 마의태자관련 보도문

 

2. 내용 : 본 주간조선은 2010년 8월 2일 화제면 2쪽에 걸쳐 ‘마의태자, 1000년 만에 경주 金씨 족보에 오른다’라는 보도를 하면서 마의태자와 그 후손이 경주김씨라는 취지로 기사화하였습니다. 이와 관련해 부령(부안)김씨대종회는 다음과 같이 반론해왔습니다.

 

첫째, 신라 마지막 태자(세칭 마의태자)는 경주김씨가 아닙니다.

신라의 마지막왕인 경순왕은 935년 군신회의를 열고 무고한 백성을 전쟁의 참화에서 구하기 위하여 스스로 제왕의 권좌에서 물러나 고려에 손국하기로 결정하였을 때 태자는 이에 반대하였습니다. 태자는 경순왕(휘부)과 죽방 태후박씨 소생이며 역사에는 이름을 알 수 없었으나 조선 정조8년에 경순왕과 후비 낙랑공주 왕씨소생인 대안군 은열공의 묘지명이 발견되어 처음으로 태자이름이 일(鎰)이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둘째, 태자의 아들은 기로와 교입니다.

아들은 기로(箕輅)와 교(較) 두 형제는 아버지 태자를 따라 입산하여 설악산 근처에서 시녀의 손에 양육되다가 태자께서 돌아가신 후 세상에 나와 고려의 탄압을 피해 기로공은 부령현(부안)에 정착하였으므로 그 후손들이 부령(부안)으로 본관으로 행관하면서 전북부안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고 그 외 전국에 산거하고 있으며 교공 역시 심산유곡인 강원도 통천에 들어 살았는데 그 후손들은 본관을 통천으로 행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경주김씨뿐 아니라 경순왕 후손 전체 문중에서 오래전부터 인정하여 족보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셋째, 삼성연원보는 위보(僞譜)입니다.

이러한데도 자칭 경주김씨 태자파라는 사람들이 태자의 아들이 선웅과 순웅이라는 사실이 등재된 것이 과거의 역사기록이라고 주장하는「신라삼성연원보 新羅三姓淵源譜」와 「월성가승원대세계 月城家乘遠代世系」에 대하여 고찰하여 보면 월성가승은 경주김씨 계림군파 김덕운이 수기로서 만든 가승인데 경순왕과 순웅장군공 사이는 밝힐 수가 없으며 은열이하의 계보는 가정전(家庭傳)에 따라 적어둔다고 하였으며 경순왕과 순웅장군공과의 관계로 사료에 밝혀진 바가 없으므로 휘 순웅공을 일세(一世)라 하고 이하로 명확히 계대를 설명하고 있는데 자칭 태자파 대종회에서는 이같은 설명의 내용이 은연중에 순웅장군공을 태자의 둘째아들로 계대(系代)하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왜곡하고 있습니다.

 

넷째, 태자의 자는 겸용이 아닙니다.

김덕운이 월성가승을 수기하면서 경순왕의 諱字를 부자(傅字)인데 부자(溥字)로 오기하고 태자의 휘(諱)를 겸용(謙用)이라 기록하면서 동국사략에서 인용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조선조 태조때 대재학을 지낸 권근이 저술한 동국사략 춘하추동 4권중 하권에는 “경순왕께서 태수 겸용을 고려에 보내어 서로 만나기를 청하니 고려왕이 서라벌에 와서 만났는데” 라는 데서 태수겸용을 태자겸용으로 오기한 것을 태자의 자(字)가 겸용이라고 조작하는 빌미가 된 것입니다.

 

자칭 태자파 대종회에서 서울대 규장각을 샅샅이 뒤져 찾아내어 금과옥조로 여기는 신라삼성연원보를 고찰하여 보면 1934년 김경대가 임의로 조작한 위보입니다. 임의로 조작한 부분이 너무 많아서 전부 열거하지 못하고 중요한 일부만 지적하면 경순왕의 조부이신 휘 실홍을 인경으로 바뀌었고 경순왕비 송희부인 석씨 한분을 조작, 생5남으로 하여 태자 일을 경순왕의 여섯째 아들로 만들었으며 그 장남을 선웅, 차남을 순웅이라 하고 셋째 영분공 명종을 종이라 개명하여 여덟째로 만들었고 낙랑공주 왕씨소생인 넷째 대안군 은열공을 감이라 개명하여 아홉째아들로 만들었습니다. 경순왕의 태자외 7왕자의 이름과 서차는 1784년 정조8년 발견된 대안군은열공묘지명에 기록된 것을 적어보면 태자 일, 2왕자 굉, 3왕자 명종, 4왕자 은열, 5왕자 석, 6왕자 건, 7왕자 선, 8왕자 추입니다.

 

다섯째, 김부식은 무열왕계입니다.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의 가계는 경순왕계가 아니라 무열왕계 위영의 후손으로 고려태조가 처음으로 경주를 두고 위영을 주장으로 삼으니 곧 부일의 증조라 하니 부일은 부식의 둘째형입니다. 김부식은 경주의 주장으로 임명된 위영의 후손이고 무열왕의 후손임을 밝힌 사람은 김부식의 손자인 김군수가 지은 동도객관이란 詩에서 증명됩니다. 한구절만 인용하면 “무열왕손 문열가(武烈王孫 文烈家)” 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문열은 김부식의 시호다. 또한 태자의 5세손이라고 기록한 김지대는 청도김씨 관조로 경순왕 4자인 대안군 은열공 8세손으로 1189년생이며 고려 고종6년 1219년 29세때 과거에 장원급제한 분으로 아버지는 김녕김씨 관조 김녕군 김시흥공의 형인 김여흥공입니다.

 

여섯째, 태자의 아들이 고려의 대장군일 수 없습니다

태자께서는 부왕(경순왕)의 손국결정에 반대하여 강원도 한계산성을 중심으로 웅거하면서 신라부흥운동을 하며 고려에 항거한 태자의 아들이 고려의 대장군이 될 수 없었을 것이며 고려 태조가 경주주장으로 임명한 위영이 태자의 중손자라는 것은 누가 보아도 허위사실임이 분명합니다.

 

우리후손들은 족보나 가승을 편찬할 때는 조상계보에 대하여 신중하게 검토하고 확인해서 등재하여야 할것이며 김경대가 사찬한 위조된 잡보를 근거로 환부역조(換父易祖: 조상바꿔치기)하여 조상님께 불효를 범하지 않기 위하여 명확하게 밝혀진 고증과 근거있는 사료에 의거, 사실대로만 수록하는 것이 후손된 도리일 것입니다.

 

신라김씨연합대종원 총재 김수길 직인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