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령(부안)김씨와 신라김씨 연합대종원 관계
우리 성씨 부령(부안)김씨가 신라김씨(김알지 후손)의 종가라고 자부하는 것은 그렇게 되기까지 선대에서 얼마나 어렵게 찾아내고 관철시켜 오늘에 이르렀는지를 알리고, 힘든 그 과정을 모른 채 너무나도 한심하고 황당한 작태를 벌이면서 우리 부령김씨 문중의 위상을 떨어트리는 이적행위를 하는 일가가 있어 알리고자 합니다.
지난 1977년 신라김씨 2000년사 편찬위원회에서 신라김씨 세계를 논의할 때 통천김씨가 태자공 김일(마의태자)의 정통 종가라는 주장을 한다기에 우리 대종회에서 임원회의를 열어 선계확인 작업을 전개하기로 결의하고 소윤공파 2인 군사공파 3인 소감공파 1인 6인을 선정 파견하여 국립도서관과 서울대학 도서관 등에서 씨족관계 고문서와 다른 씨족 보첩 등을 섭렵하여 우리의 선계를 확인 정리하였습니다.
신라김씨 2000년사 편찬위원회에서 통천김씨 대표와 다른 본관대표 사학자등 20여 명이 대좌하여 토론한 끝에 우리의 선조는 기로 · 회보로 계대하는 선계가 태자공의 적장자임을 시인하고 확정하였습니다.
▲ 대왕각(김일(마의태자)사당) 부령김씨 관시조 (강원도 인재군 삼남면 금부리)
▲ 고려재상 지포 김구 묘역 부령김씨 중시조 (전북 부안군 변산면 운산리)
신라김씨 2000년사를 계기로 신라김씨 연합대종원을 정식으로 출범시키고, 우리 일가이신 김형래(고인 전국회의원 부령김)씨를 초대 총재로 추대하고 신라김씨 연합대종원의 기틀을 마련하게 된 것입니다. 그 후에 김형주(고인 삼안건설 대표 부령김)씨로 이어지면서 연합대종원이 명실공히 신라김씨 연합체로서 경순대왕 능제와 신라26대왕 추향대제 등 신라김씨의 위상을 높이는데 큰 역할을 하여 왔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2000년에 신라문화 보존회와 2원화된 조직을 하나로 합쳐야 된다는 여론에 의하여 신라문화보존회 이사장이던 부령김씨 김수길씨가 드디어 통합을 이루어 신라김씨 연합대종원 총재를 겸하고 오늘까지 연임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다가 2012년에 내부에서 분란이 일어나 한 두사람이 뛰쳐나가 별도의 신라김씨 연합대종원과 신라문화 보존회를 결성하고, 대립 상태에서 법정은 기존의 신라김씨 연합대종원 총재 및 이사장 김수길씨의 제소가 승소하고, 후속조치로 상대조직을 와해 시켜 평정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기존의 조직에서 이탈한 자는 종친을 상대로 인터넷 족보를 만드는데 필요한 수단 비용을 받아 상업적으로 악용하는 행위는 문중의 잘못된 선계 현안을 바로잡기 보다는 돈벌이에 눈이 어두어 종인이 해서는 안 되는 것을 모르는 무지의 소치로 안타깝지만 각 문중을 대표하는 대종회에서 엄하게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후손들에게 정통 족보역사를 전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통 부령김씨 뿌리의 역사는 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지나 2000여년이 지난현재 가족관계 증명원(호적초본)에도 부령인으로 변화가 없다. 부안김씨는 30여 년 전에 부령김씨 일부 종인들이 행정 지명 부령현이 부안으로 통합된 것을 이유로 경솔하게 부안김씨로 개칭한 어리석은 결과가 우리문중을 둘로 만든 것이다.
부안김씨라고 주장하는 일가의 부모, 조부모, 선조들은 모두 부령김씨가 분명한데 왜 개칭을 하는가? 부안김씨라고 하는 그들은 조상의 제사때 축문을 부안인이라고 쓴다면 부령인의 선조가 부안인 제사상을 받을 수 있을까? 선조와 후손에게 누를 끼치는 죄인이 되지 맙시다.
▲ 지포 김구 묘역 및 경지재 가는길 입구 문정공 시호는 고려말 충열왕으로 부터 지포 김구 사후에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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